마을이야기
제목예천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샘-주천(酒泉)
이 샘은 물맛이 달 뿐 아니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울산 지방의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우리 고을을 지나던 양호라는 명나라 장수가 이 샘의 물을 마셔 보고 감탄한 나머지 “과연 예천의 이름처럼 물맛이 좋다”고 하면서 “예천의 지명은 이 샘 때문에 얻게 되었구나”라고 극찬 하였다.
또 이 샘 때문에 통일신라 때 `예천'이라는 행정이름이 생겼다는 설(說)과 그렇지 않다는 설이 엇갈리고 있으나, 참고 문헌이나 구전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샘(속칭 군방골) 설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군방골샘은 깊이가 8m나 되며 지하에서 용출하는 자연수로 이름만큼이나 달고 차서 지역민들에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감로수(甘露水)였고, 또한 한과 애환을 함께 한 곳이기도 하였다.
군방골이란 조선 중기까지 관아와 활을 만들던 궁방(弓房)이 모여 있었으며, 일설에는 동헌을 지키던 군방(軍房)이 있던 곳이라 하여 군방골샘 또는 궁방골샘이라 구전되고 있다.
고을의 지명 유래와 주민들의 애정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샘이기에 상수도 보급으로 폐정 하였던 것을 지난 90년에 목조와가 사각 지붕의 보호각을 세우고 샘을 복원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자료 출처 = 예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