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뒷집 할머니를, 나는 선동할매라고 불렀었다. 뒷집 할머니는 선동에서 시집을 와서 동네 어른이 선동댁이라는 택호로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불렀었다. 선동할매는 우물가에 배나무와 포도나무를 심어 놓았었다.
봄이면 하얗게 배꽃이 우물가에 피었고. 여름이면 포도 넝쿨에 달콤한 포도가 우리를 유혹했고. 추석이 다가올 무렵인 가을이 되면 재법 굵어진 돌배를 할매 몰래 한두 개 따 먹기도 했었다.
그 할매 댁에 어느 날 배꽃같이 환한 새색시가 시집을 왔다. 그 후 마음씨 좋고 놀기 좋아하던 할매 아들 아재는 언제나 집 앞 골목길을 지나다니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었다. 아재는 새색시가 우물에서 물 길어 올리는 게 힘들거라며 동네에서 처음으로 우물을 메꾸고 그곳에 펌푸를 세웠다.
할매 살아생전 뒷집 아재는 이쁜 딸 셋을 낳았고. 할매가 세상을 뜨고 그렇게 바라던 아재 닮은 아들이 태어났다. 배꽃같던 새색시는 중년의 아지매가 되어갔으며, 맘씨 좋던 아재는 술이 늘어 어느 날인가 죽음 직전까지 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농사지어서는 살기가 힘들다며 아재는 뒷집을 빈집으로 남겨 놓고 훌쩍 서울로 이사를 갔다. 할매 살았을 적 반들거리던 마루, 지푸라기 하나 굴러다니지 않던 마당, 우물을 메우고 세운 펌푸, 펌푸는 녹이 쓸어가고, 마당엔 잡풀들이 가득해 갔고, 마루는 뿌옇게 먼지가 앉아도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이 없이 적막함만 빈집을 지키며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그 후 나도 고향을 떠나왔다. 그리고 가끔 내려가는 고향집에서 뒷집까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항상 뒷집이 비어 있어도 거기에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었다.
내게는 아직도 뒷집 할매의 추억만 가득한 곳. 그 뒷집에 몇 해 전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고 들었었다. 그 후 뒷집은 그전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시멘트 슬라브집으로 단장을 하고 반듯한 담장이 세워졌다.
올 정초 대보름을 맞아 고향집에 내려갔었다. 뒷집 마당에서 마당 윳놀이를 한다고 해서 가 보았다. 타성바지 뒷집 마당에서 벌어진 윳놀이, 도, 개, 걸, 윳, 모... 뒷집 할매도 어디서 내려다보고 있을까... 그 예전 모습은 두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할매의 기억조차도 이제는 지워지는 것이 아닐까. 돌담이 무너져 있어도,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던 그 옛집이 그립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변해 이제 뒷집은 간곳이 없고 깨끗이 단장한 낮선 한 이웃이 있을 뿐이다.
새롭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아름답고도 슬픈 추억이 앉았던 자리가 새로움에 밀려 나의 기억도 밀려나는 것 같다.
뒷집 할매 마루에 걸래질 할 때라도 우리 자매들이 가면 언제나 반가워하던 소리.
“이그, 이것들 왔나. 어서 올라오느라!”
기억이 아픔인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소중한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는 그 기억마져 무너져 없어진 돌담처럼 지워지는 듯해 코끝이 시큰해진다.
유년의 그날 어린 계집아이와 할머니. 딸부자 집 그 큰딸을 아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할머니. 그렇게 가난한 시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라진 날들이기에 안타까운 것일까... 그 계집아이는 이제 중년이 되어 벌써 할머니의 길로 가는 길목에 들어와 있다.
먼 훗날 돌아 볼 때,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는 날들이 지금도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끊임없이 시간은 가고, 세상은 변하고, 아쉬움은 남고, 다시는 돌아오질 않을 날들은 이제 점점 빠른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아스팔트 깔린 새로운 도로 덕에 가까워진 고향. 이제 우리 곁에서 무엇을 보여 주고 있는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언제까지 과거지향적인 것들이 우리를 살찌울 것인가? 우리 삶에서 미래지향적인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의 전체적인 삶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시골 풍경은? 우리의 고향 풍경은? 우리의 집안 풍경은? 나의 주변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인가?
************달빛처럼 고요하고 싶어라.......
(이글은 아이럽에 게제된 야당(죽림동) 권미자님의 고향을 생각하면서 쓴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