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수상작 글 입니다.
| 청빈문학상 수상작 전문 |
청빈문학상 응모작<<단편소설>> 제목- 시간 따먹기 지은이-오광진 #씬 1<퇴색된 기억-24시간…한평생> 눈을 감는다.…잠으로 빠져든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아스라이 멀어져간 그때도, 건넌방에선 아버지의 시름 섞인 노래 자락이 내 귓전에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로 들려왔었다. 그때의 아버지, 한평생 넝마주이를 찬양하시다가 살다 가신 아버지가 무엇이 그리 서러워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많은 노래자락을 저리도 구슬피도 불렀을까? 라는 의문은 내 머리위로 세월의 흔적을 대변하는 하얀 서리가 드문드문 내릴 때쯤 알게 되었다. ?난 말여,…세상을 방랑하는 거지로 살껴.? 내 아버진, 당신의 자식들을 모아 놓고 꼭 이런 말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진,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는 사시지 못하셨다. 다만,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이 일대에선 주일만 되면 교회당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항상 넝마차림으로 나돌아 다니셨다. 꼭 주일이 되면 말이다. #-2<자명종-아침> ?여보, 회사 나가셔야죠?…여보!? 새벽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시계처럼 내 아내는 오늘도 잠에 포박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같은 시간에 필사의 신념으로 깨운다. 전쟁의 시작. 밤새 가위에 시달리다 겨우 잠든 나를 아내는 알지 못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의 얼굴을 망연히 쳐다본다. 마치 물에 부른 찐빵과 같은 얼굴로 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내. 그 얼굴을 보면서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저 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이유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일까? 자기의 인생을 망가트린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계속 반복적인 이런 생활을 무덤덤하게 그냥 숙명인 냥 받아들이며 맹목적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주 가끔씩 아내가 여행을 하자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저 여자 또한 나처럼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 한사람일지도 모른다. ?여보, 어젯밤에는 왜 그렇게 늦으신 거예요??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나는 아내가 식탁에 차려놓은 반찬 개수를 멀찌감치 에서 세어본다. 오늘아침의 식단도 어제와 변함 없는 일곱 개다. 멸치조림, 깍두기, 총각김치, 계란찜, 구운 김, 배추김치, 그리고 …미역국. 생일도 아닌데 미역국이라? 이는 남편을 아끼는 아내의 세심한 배려였다. 미역국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탄생의 축하와 출발의 새로움을 주는 아주 깊은 뜻이 배여 있다. 아내도 그런 의도로 일주일이면 최소한 두 번은 아내가 짜 놓은 식단에 미역국을 넣어두었다. 그런데 난 아내의 이런 농액의 깊은 마음을 이제는 거부하고 싶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아내가 주는 부담감에서 탈출하고 싶다. 아내가 바라는 미역국의 의미는, 결국 회사에 나가서 새로운 기분으로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찌보면 이건 무언의 압력이다. 피나게 치열한 경쟁시대 속에서 낙오자 내지는 패잔병이 되지 말라는 총칼 없는 협박이다. 고로 아내는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보? 제 말 안 들리세요?? ?응…, 뭐?…어…,그 말. 그냥…? 아내의 다시금 들려온 소리에 난 <그냥>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냥>이란 말은, 나에겐 최선의 대답이었고 아내에게는 최악의 답신이었다. 최소한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 또한 아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일부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내가 뱉은 <그냥>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면, 그 말이 아내의 물음에 대한 정답이었다. 어젯밤에 난 아무런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돌아 다녔으니까 말이다. ?그냥이라뇨?? ?그냥 돌아 다녔어. 그냥…? ?…얼른 씻고 아침 드세요. 회사 늦겠어요.? 나의 무성의한 말에 아내는, 체념의 그림자와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반복적인 말을 남기고 나에게서 발길을 돌렸다. 아내가 남기고 간 그림자의 끝자락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공포에 떨고 있다. 집안에서 버려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면 너무 내 자신이 비참해 지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의해 강제로 아니, 의식적으로 공간 안에서 떠밀리어 세상 속으로 버려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밖이 아닌 다른 공간 안으로 버려지고, 그 무리 속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에 서로의 등을 기대고 위안을 삼는 것도 이제는 지겨우리만큼 싫다. 그러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세상살이의 과정이기에 난 오늘도 관행적인 기우로 치부해 버린다. #-3<버림의 발 밑-오전> 바람이 차다. 한여름인데도 살이 시릴 만큼 바람은 차가웠다.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끝으로 집에서 버려진 나는 그만 서러움에 목이 메어 그들의 인사를 뒷전에 두고 아무 말 없이 계단으로 이어진 동굴을 향해 더딘 발걸음을 옮긴다. 숨막힘의 공포가 서려있는 동굴에서 겨우 빠져나와 몸을 움츠려 아파트의 마지막 입구를 나오던 나는 어젯밤에 가위에 놀라 몸이 경직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만다. 나는 그곳에서 조락의 슬픔을 본다. 어제 아침만 해도 분명 농염한 자태를 발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던 화단의 꽃들이 밤새 내리던 수마(水魔)의 냉혹함에 모두 꺾이고, 병들고, 그리고 할퀸 상처들을 보듬을 사이도 없이 시들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에게 기쁨을 주던 그것들이 갑작스레 벌어진 한순간의 시달림으로 무참히도 죽어있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생명이 어느 정도로 질기고 모진지 새삼 느끼며 몸서리 쳐본다.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력이 나를 가끔씩 미치게 한다. 지금 이 순간만 하더라도 나는 버려진 인간이 되어 세상 속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면서도 가족의 안위(安慰)를 지켜야한다는 도의적인 책임과 잘못 내딛은 희생적 의무감의 발걸음 때문에 이렇게 나왔다. 그런 나의 행동은, 저 앞에 시들어 버린 화단의 화초들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홀로 감수(甘受)하며 살아야 한다는, 조화옹이 정해준 직무의 책임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을 난 거부하려한다. 미리 점지된 포박당한 내 인생을 조화옹에게 따지고 싶다. 왜 나를 속박이라는 포승줄로 지옥 같은 인생살이 속에 포박시켜 가뒀냐고. 이것이 내가 이 세상 속에서 벗어나고픈 이유였다. 가장(家長 또는 假裝)이란 위치에 올라서면서 맨 먼저 인정해야 했던 것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인정할 무렵 셋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셋의 의미를 버거워 할 때 넷의 개념이 가장(假裝)을 짓눌러 버렸다. 넷의 짓눌림은 나를 질식하게 하였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프고 그러다가 눈물이 시야를 덮어 맹인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소원은 오직 긴 어둠이 빨리 왔으면 하는 속절없는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인간사 바라는 일이 모두 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부질없는 이 바램은 자포자기 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었다. ?어, 김 과장님 여기서 뭐하세요? 회사 안 가세요?? 내가 아파트 입구에서 망연자실 화단에서 무자비한 수마가 자행한 조락의 잔해를 보고있을 때,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박 대리가 넥타이를 급히 조여 매며 나오고 있었다. ?가야지.…죽는 연습을 하러 가야지.? ?…네?? ?아무것도 아닐세.…아무것도 아니야.? 내 입에서 나온 혼잣말에 박 대리는 내가 아까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경직이 되어 아파트를 벗어나는 나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 또한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지 몰랐다. 왜 그런 말이 나온 걸까? 구태여 저 사람에게 일러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아마도 그건 내 가슴에 들어와 있는 검은 장막이 빛 한줄기 외면한 채로 가려져 있기 때문일거다. 아마도……. #씬-4(전쟁의 시작-출근) ?이봐, 김 과장? 저어…,? 가족들은 나를 집밖으로 내몰았고, 집밖에서 숨쉴 시간도 없이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세상 속으로 또 다시 떠밀렸고, 세상은 다시 나를 회사라는 굴레속으로 들여보낸다. 회사에 들어온 나는 습관처럼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커피 자판기에 넣고 졸음을 쫓는 각성제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영업부라는 명패가 붙어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가 들어섰을 때 사무실의 공기는 에어콘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그 안에 서려있는 수많은 치부욕(致富慾)의 시선들 때문인지 서늘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이곳에서 에어콘 바람을 쏘일 때면 시원함 보다 언제나 서늘함이 들었었다. 항상 긴장을 해야 하는 곳. 그곳에는 항상 서늘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 그런 곳이 회사라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서늘한 기운을 받으며 들어서는 나에게 입사 동기인 강 부장이 머뭇거리는 말투로 나를 불렀다. 입사동기이자 사내 직속 상사가 된 강 부장을 언제나 마땅치 않아 했지만 여기가 군복무를 마치고 또 다시 입소한 사회 군대이니 만큼 그런 하극상적 불만은 금기시 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나는 지금 곤혹으로 움찔거리는 부장의 입을 보고 있다. 저 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워삶았을까, 하는 아주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해본다. 하기야 영업부 입사동기인 그는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영업실적이나 아부실적이 나보다는 월등히 나았었다. 알밤 까듯 까놓고 말해, 그는 세 치 혀의 위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 케이스였다. ?음,음,…저 말이야, 김 과장?? ?이번엔, 접니까?? ?자넨 아니고……? ?그럼? 박 대리……?? 나의 밑도 끝도 없는 확신 섞인 물음에 조 부장은 아무 말 없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 부장의 주억거림에 나 또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조 부장의 자리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근 십여 년 동안 나에게 길들여져 있던 집무책상에서 내 손때가 묻은 소지품을 종이 가방에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가올 자기 차례를 미리 연습을 해두는 것이다. 덜 슬프게……. 얼마 전부터 회사에는 극심한 경기 침체로 정리해고의 삭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회사원들은 내심 자기가 감원 대상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심정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만 안일하기를 늘 기도하고 있었지만, 밑의 직원들이 하나 둘 퇴출당하면서 다음 차례가 나라는 위기의식이 시나브로 내 머릿속에 메워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침투한 위기의식은 악성 뇌종양이 되어 좀벌레처럼 뇌를 갉아먹고 있다. 암은 초기에 발견되면 치유가 가능하다는데,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나는 이미 늦은 것이다.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위기의식은 한 올의 치유책이던 조기치료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내 편이었던 가족마저 등을 돌려, 가슴을 짓누르는 짐이 되어 나를 옴짝달짝 못하게 포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짐을 벗기 전까지는 암세포를 덩어리로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맘 편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짐을 훌훌 털어 버리면 좋으련만 지금 이 순간 왜 이리도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지 모르겠다. 내 순서가 되면 늘 꿈꿔 오던 대로 집에서 이제 버림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희생적 의무감으로 사계절 모두 겨울철인 이 소굴로 이제는 들어서지 않아도 되는데, 하늘위로 장대비를 머금은 해 가린 먹장구름들처럼 머릿속과 가슴이 왜 이리도 깜깜해 지는지 모르겠다. 암담한 현실. 말 그대로 암담한 현실이었다. 씬-5(출소=자유-퇴출) 부하직원들이 하나둘씩 퇴출당하고 나 혼자 덩그마니 이 감옥을 지키고 있다가 오늘 날짜로 보란듯이 사표를 부장면상에 던지고 감옥에서 출소했다. 내가 오늘 날짜로 회사에서 퇴출당할 것이라는 것을 인사부 미스 리를 통해 미리 들은 터였다. ?자기야.…영업 2팀, 내일 날짜로 공중분해 될 거야.…자기도 명퇴고.? 어젯밤 치열한 섹스를 즐긴 미스 리는 침대에 누워 끈적거리는 신음을 푸석한 목소리로 바꾸면서 뱉은 말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충격보다는 왠지 모를 공허함에 빠져들었다. 마치 격동적인 정사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액분출의 휘날레 뒤에 오는 공허감 같이….그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난 침대에 누운 채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폐 속에 뒤엉키며 들어간 담배연기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난 호흡을 멈춘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연매(煙煤)가 짙게 섞인 연기는 살갗이라도 뚫고 나오기 위해 온몸을 휘감고 있는 힘줄들을 불거지게 한다. 그리고 눈알마저 튀어나오게 부풀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정액으로 끈적거리는 미스 리의 몸을 덮친다. 그리고 미친 듯이 미스 리의 몸을 핥다가 자궁 안으로 사정도 못하고 심한 흉복통의 고통을 두 손으로 감내하면서 호텔 밖으로 무언가에 쫓겨 도망치듯 나온다. 한 명밖에 남지 않았던 부하직원인 박 대리마저 퇴출당하고 나자, 내 머릿속에는 언젠가 보았던 아파트 앞 조락들의 비참함이 지배했고, 연이어 따라온 무료함이 나의 뇌를 잘근잘근 씹어 없애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부하들을 전장에서 다 죽인 무능력한 패잔병 장교가 되어 하릴없이 볼펜을 맥없이 데스크 위에다 굴리고 있었다. 혼자 살아남아 있는 자의 비애. 그건 전장에서 미리 죽어버린 자들이 주는 형벌이다. 회사에서 또한 나의 무료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아무런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아니, 회사는 나에게 콘텍 600이라는 감기약의 캡슐 안에 들어있는 알갱이를 하나하나 색깔별로 세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시간 까먹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제풀에 꺾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자진해서 부하들을 죽인 책임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뜻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얼마전부터 퇴출당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내가 무슨 미련이 남았겠는가. 이건 그들을 향한 내 식의 복수이다. 비록 이란격석(以卵擊石)의 허망한 몸짓이지만, 그런 객기라도 부리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의 존재적 가치를 허무하게 부서지는 사금파리처럼 땅속에 파묻히게 하는 것이고, 그들이 미리 탁상공론해 파놓은 함정에 빠져 그동안의 쌓아올린 공로가 무실해짐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난 그것이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존재적 가치만은 인정해 달라고 그들에게 마지막 몸부림을 짓고 있는 것이다. 구지 내가 내 부하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자면, 세태의 흐름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은, 그동안 체득하지 못한 무감각 때문이다. 회사 동기와 눈치 빠른 철새들은 자신들의 목을 지키기 위해 윗선에게 손바닥 로비를 했었고, 윗선의 옷깃에 이는 바람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감지했었다. 그래, 그들은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촉수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준비한 자와 준비 못한 자의 차이는 목숨을 담보로한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었다. 미리 세태를 읽고 준비를 해둔 자는 임금이 깎이는 고통까지 감내하며 그 자리를 고수했고, 준비를 못한 자는 이렇게 허망한 몸짓을 고수하고 있다. 아무리 경기침체가 불러드린 삭풍이라지만, 거기에서도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생존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영업실적보다도 더 높이 사는 게 아부실적이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아부실적에서 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부하직원들을 역적이라는 죄명을 씌워 최고의 극형인 참수형을 당하게 했고, 이제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이건 분명, 불명예스러운 퇴진이었다. 전년도 영업실적 1위로 명실공히 회사발전에 이바지했던 내가 불명예라는 꼬리표를 달고 퇴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지 나의 자진 퇴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이, 패잔병의 장교인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머지않아 본색을 들어 낼 것이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표를 던질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비를 맞고 있는 빨랫줄의 옷가지를 보는 것 같은 허망함이 시나브로 나를 조여 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미스 리가 주었던 망언과 함께 그 두려움과 허망함이 지독스럽게 고약한 현실과 한데 뒤엉키어 숨통을 휘감으며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은 오늘 아침까지 계속되었으며, 가족들의 배웅을 받는 순간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질식을 느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질식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괴로움보다는 황홀한 섹스의 쾌감보다 더한 오르가슴이 온몸의 세포를 발기시키며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 목을 매는지 말이다. 나는 그런 비극적 황홀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온몸으로 포획하며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어…, 김 과장….헉!? 나의 예측대로 조 부장은 내가 출근해 커피를 뽑아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떠듬거리며 호출을 했다. 조부장의 얼굴에 가증스러운 난처함이 여울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득의양양한 거만함이 숨어있는 줄 나는 안다. 그는 나에게 어렵게 말을 하고 난 후 내가 짐을 챙겨 회사를 나갈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상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적우선인 전장에서 또 한 명의 경쟁상대인 적장을 영구히 없앴으니까 말이다. 난 그의 그런 심중을 읽고, 찬물을 끼얹듯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사표를 그의 면상에 던지고 평소 연습한대로 내 소지품을 익숙한 몸놀림으로 종이가방에 챙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통쾌하다. 그 잘난 조부장의 새하얗게 질린 표정과 연이어 이어진 불쾌함으로 실룩거리는 붉어진 얼굴을 보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집에서와 회사에서 버림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신세가 되니 그 또한 통쾌했다. 더 이상 미역국을 먹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난 집에서 버림을 받아 회사로 강제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앞으로는…, 당분간은…. 씬-6(자유-또 다른 구속의 시작) 회사에서까지 버림받은 나는 서늘하기만 했던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조금 전만 해도 이 지긋 지긋했던 소굴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는데, 그리고 어젯밤에 미스 리를 호텔에 남겨두고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출구를 찾으려고 밤거리를 쏘다녔는데, 막상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나를 발견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윗상사의 눈을 피해 사우나에 가서 모자란 피로를 참담한 기분으로 새우잠을 청하며 풀었었다.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 없이 자유의 몸이 되었건만 참담한 기분은 어제보다 더 해만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게 된다면 그 시간들이 그리워 질 것 같아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회사를 나온 나는 어디로 갈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 특별하게 갈 곳이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나 싶은 것이 참으로 어이도 없고 비참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애감에 몸서리까지 쳐지고 있었다. 졸지에 회사에서 쫓겨난 나 자신을 하늘에 비추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 또한 나를 버렸는지 시릴듯한 파란하늘은 오간 데 없고 지금의 내 마음처럼 먹장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것 같은 하늘. 거기에서 나를 찾는 다는 것은 애초에 그른 일이었는지 모른다. 몇 년 전까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보겠다고 불찰주야 설쳐댔던 내가, 언젠가부터, [무지한 행복보다는 불행한 지혜를 선택하며 혹독한 염세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쇼펜하우어]의 망령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염세주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되 보려고 나 스스로 안간힘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얼치기였는지를…. 빗방울이 하나가 하늘에서 내리꽂히며 내 얼굴을 가격한다. 그리고 줄지어 서너 줄기의 비가 내 얼굴을 연타한다. 그리고 그것들과 어우러져 눈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물줄기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그리고…,장대비가 내 마음과 내 머리 위로 세차게 곤두박질친다.…미스 리와 섹스를 하고 싶다. 그녀의 백옥같이 풍만하고 하얀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인사부에서 영업1팀 대리로 승진해서 온 미스 리도 나를 버린 것 같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나와 몸을 섞으면서 ‘조 부장님?이라고 읊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정의를 보란듯이 보여주고 있는 실태다. 나는 목적 없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내 처지와 흡사하게 보이는 초라한 선술집으로 들어가 안주 없는 막소주에 유린당해 대취하고 만다. 그리고 불콰해진 얼굴로 늘 그랬던 것처럼 같은 시간에 집으로 향한다. #-7(일상생활에서의 비애-출근) ?여보, 이제 일어나셔야죠? 회사 늦겠어요?? 아내는 오늘도 여전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간밤에 내린 비와 함께 마신 소주가 내 위장을 면도날로 대패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밤에 왜 그리도 마셔댔을까? 하고 자문을 해보지만 그렇다할 변명의 구실이 없다. 졸지에 실직자가 되었다는 믿기지 않은 구실을 변명으로 치부할 순 없지 않은가. 아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물에 불은 찐빵처럼 부은 얼굴은 여전하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오늘은 애무하듯 자세히 훑어보았다. 저 곱던 얼굴이 나란 존재를 만나면서 피곤이 덕지덕지 앉아 살이 트고 여러 갈래의 골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보면 나란 존재는 참으로 악한 인간이었다. 행복을 전제로 결혼을 해서 넓디넓은 세상 속에 우리만의 공간인 한 울타리 형성해 놓고 그 안에서 가정이라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왔는데, 결과적으로 결정지어진 것은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어둠이 짙게 깔린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아내 역시 같은 시간 속의 고루함을 거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런 아내의 삶 또한 나란 존재가 만든 것이다. 가장이라는 권위주의적인 허구성 때문에 말이다. ?여보, 뭐 하세요? 얼른 씻고 아침 드시지 않고?? ?…씻어야지.…회사 가려면 씻어야지.?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무슨 일이 있냐고는 내가 아내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오늘 아내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묻질 않았다. 묻기를 포기한 걸까? 아니면 물어보나 마나 ?그냥?이라는 무성의한 모호한 대답이 나올 줄 알고 더 이상의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걸까? 만약 내 자문에 대한 아내의 대답이 전자라면 차라리 아내에게 덜 미안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후자라면,…나는 아내에게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은 고통을 심어주었단 말이고 고통이란 자체는 인간을 모독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어쩌면 이 죄는 내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평생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죄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마음은 아내에게 미안함의 눈빛을 실어 보내고 있었다.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어젯밤에 과음을 해서 그런가?.? 결국 난 아내에게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론만 얘기한 체 어제와 마찬가지로 식탁 위의 식단을 바라보았다. 총각김치, 자반고등어, 장조림, 감자조림, 양념 깻잎, 동치미 그리고 된장찌개. 오늘은 다행이도 미역국이 보이질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되던 미역국이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줄은 몰랐다. 오늘따라 더욱…. #-8(버림의 발 밑-오전) ?여보, 다녀오세요.?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침을 모래를 씹는 서걱거림으로 겨우 목구멍으로 넘긴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늘 가던 회사도 오늘부턴 갈 필요가 없었고, 회사를 먹여 살리는 수 백 개의 상품 매장도 이제는 갈 필요가 없다. 분명 이것이 나에게 처해진 현실인데, 새롭게 시작된 현실 속에서 나는 적응을 못하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더듬이 잘린 나비처럼, 집을 잃은 세 살짜리 미아처럼 도심 한가운데 서있다. 차라리 유아라면 마음씨 좋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미아보호소라도 갈 터인데, 사십 중반이 넘어선 나이 먹은 이 미아(迷兒)에게는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길을 따라 나도 따라갈 텐데 말이다. 나는 생각 끝에 지금 집에 혼자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대로 내 처지를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아내에게 하루라도 빨리 말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같이 설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나같이 실직자가 먼저 된 선배들은 가장이라는 책임의식 때문에 모두들 함구하고 자신이 만신창이가 될 무렵, 타인에 의해서건 자신의 입을 통해서건 가족들에게 자신의 비참함을 알린다. 그것이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보호하는 ?최후의 선택?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들 나름대로 가족들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으려는 깊은 속내도 있겠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선인들의 말씀도 있듯이 지금 이 상황에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나만의 지론이었다. 이 말에 누군가 나를 향해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의지력이 없다고 손가락질이나 뒷머리가 당길 정도로 뒷말들을 할지도 모른다. 설사 그런다 하여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고 그네들은 그들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다. 내가 엎드려 기어가던 뛰어가던 그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이유와 명분이 분명 없다. 그들이 내 주머니 사정을 봐 주는 것은 결코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런 지론을 자양분 삼아 백 원 짜리 동전하나를 공중전화기 동전 삽입구에 넣는다. 공중전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르르 떨리는 나의 손끝을 외면하며 냉큼 집어삼킨다. ?여보, 나요.…나 말이요, 어제 부로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었어. 그래서 말인데, 앞으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나로선 막막할 따름이요.…무엇을 했으면 좋겠오? 당신은 나보다 현명한 결단력도 있고 추진력도 있으니까, 당신이 한번 생각해 보구려.? 이런 당당함으로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보세요? 저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난 그만 수화기를 놓아버렸다. 왜일까? 그렇게 당당하고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견디어 낼 것 같은 내가, 왜 아내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죄를 지은 양 서둘러 전화를 끊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 알량한 자존심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비웃던 최후의 자존심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난? 반란이다. 이건 분명 다른 가장들을 비웃었던 내 자신과 속 빈 지론으로 섣불리 행동했던 또 다른 내 자신들과의 연대적인 반란이었다. 그렇다면 내 자신 또한 나를 포기하고 있는 걸까? 슬프다. 내가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내가 나 자신을 비겁자라고 욕하고 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 옛날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실직자가 된 일이 있었다. 그 당시의 우리 사 남매는 육 개월 여 동안 아버지가 실직자인지 몰랐다. 왜냐하면, 제법 튼실한 피혁공장에서 공원으로 근무하신 아버진 늘 회사 유니폼을 입으시고 출근하시고 퇴근시간이 되면 우리들을 위해 주전부리 할 거리를 한아름씩 사 가지고 오셨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는 나날이 야위어가는 당신의 몸과 어머니의 식단처럼 하루가 다르게 그 주전부리 양도 현저하게 줄어들더니 어느 날부터 몸에 배인 습관처럼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날이 허다했었다. 그것이 없어지자 우리들은 아버지의 빈손을 책망하고 서운한 기색으로 건성이 섞인 인사를 했었다. 그 당시의 우리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그런 존재였었다. 우리들의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제과점 주인아저씨 같은 존재. 아버지가 실직자가 되었다는 것은 주전부리 거리가 완전히 없어진지 몇 달이 지나서였다. 우리들의 입을 행복하게 해주시던 아버지가 그 것을 그만 두시자 우리들의 불만은 거세졌고, 그 불만은 바로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경외시 했었던 아버지에게-비록 우리들의 입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분이지만, 때로는 낭창한 회초리처럼 엄격하셨다.-그 불만을 토로하기에는 다소 무리수가 따랐던 것이다. 이런 불만을 우리들에게 듣던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아버지에게 우리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셨고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어머니 당신의 불편한 심경 또한 토로했었다. 어머니의 불편한 심경은 지극히 상투적인 것이었다. 왜 돈을 갖다 주지 않냐, 세금이 밀려 있다, 등등 돈에 관계되는 모든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불편함이었다. 어머니의 매몰찬 말을 아무런 대꾸 없이 내내 들으신 아버진 몇 마디의 말을 남기고 건너편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당신의 구겨진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듯 스스로 독방신세를 택하셨다. 그리고 어머닌 다음날 아침 시간에 우리들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이러셨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갑자기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육 개월 전에 불가피하게 대거 감원을 감행했다는구나. 감원대상에 아버지가 속했고, 지금은 실업자가 되셨다.…그동안 막노동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지금 많이 아프시구나. 심장병이시랜다. 병까지 얻으신 걸 보면 그동안 많이 힘드셨던 모양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집안형편을 이해하고 될 수 있으면 아버지의 심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집안에서의 행동을 각별히 조심히 하거라. 그리고…,오늘부터 이 애미가 아버지 대신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너희들의 뒷바라지에 소홀할 것 같구나. 그러니 너희들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모두들 알았지?? 그때 우리는 어머니의 말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은 자연히 자기의 일들을 알아서 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신의 일들을 솔선수범을 할 시기에 어머니는 재래시장 한 귀퉁이를 꽤 차고앉아 어묵을 만들어 파시고 계셨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버진 허구헌날 건너 방에서 술에 취해 사셨고, 술에 취하신 날이면 우리들을 모아 놓고 이러셨다. ?난 말여,…세상을 방랑하는 거지로 살껴.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내 맘대로 살수 있잖여. 사람들에게 구속을 받는 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감이 따르는 뱁이지. 느그 애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처럼 말여. 암 그렇지.…그 심정 말을 안혀도 내 충분히 알지.? 이런 말을 자주 하시던 아버지는 우리들을 놓아주시고 밤이 새도록 이 노래를 부르셨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발길…? 그리고 다음날, 작업복 차림으로 공사판에 나가셨다. 심장병으로 피골이 상접한 파리해진 몸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 아버지를 어디에서건 거부하는데도 말이다. 일말의 가장이라는 책임의식이 부채질을 한 것일까? 아버지의 그러한 몸짓은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버거운 모습이 금방이라도 파삭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낙엽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하나의 행복이 있었다. 주일이 돌아오면 작업복이 아닌 넝마차림으로 새벽이슬을 밟으시고 집을 나섰다가 해거름이 있을 때쯤 되서야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무엇을 하며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돌아다니셨는지는 모른다. 아버지 말로는 세상을 떠돌다가 오셨다는데, 동네 분들의 말에 의하면, 넝마차림의 아버진 청량리역 시계탑 밑에서 역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신다고 하였다. 아마도 아버진 그때 역전으로 쏟아져 나오는, 조선 팔도에서 올라오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그네들을 보면서, 그들이 달고 온 조선팔도의 향수를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세상을 방랑하려는 욕구를 억제하셨고 동시에 충족도 하셨을 것이다. #-9(아버지의 그림자를 좇아-그곳을 향해) 그 시절의 아버지의 심정,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또한 아버지처럼 내가 이렇게 무능력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숨기고 양복 차림으로 나와 어느 구석진 외진곳에서 삶에 찌들은 오물이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막노동판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다가 아버지처럼 병이 들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벌거숭이가 될 때, 그제서야 고백할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내 아내는 우리아이들에게 그 옛날 내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알려 주었던 대로 그 말을 해줄지도 모른다. 결국 나도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가 되었다. 우습다. 날 이렇게 만든 세상이 우습고, 모든 걸 숨기고 강한 척 한 집안의 가장노릇을 하여야 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내가 우습다. 나는 이렇게 무대에서 웃긴 코메디를 하고 있는데 나를 봐주는 객석의 관객들은 한 명도 없다. 그런 현실이 나를 웃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더욱더 비통스럽게 웃게 만드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나의 생을 갈무리하며 아버지가 불렀던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꿈을 지척에 두고 잠에서 깬다.…눈을 뜬다.…아내의 소리에 출근 준비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