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제목금당실 소개(용문초등총동창회글 옮김)
작성자관리자 @ 2004.06.12 18:26:59

상금곡리

상금곡리에는 수 10기의 고인돌(支石墓)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BC 7C)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고, 甘泉人 文獻(1402년 進士)이 15세기 초에 이곳을 개척하였는데, 文獻의 손자인 文叔孫(監察)의 사위들인 咸陽人 朴從鱗(1496∼1553), 原州人 邊應寧이 16세기 중엽에 정착하여 지형을 살펴보니 연화부수형이라 하여 연못을 예칭하여 금당(金塘)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본래 예천군 제곡면 상금곡동의 지역으로서, 금당실 위쪽이 되므로 웃금당실 또는 상금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류동 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상금곡동이라 하고, 행정상 동촌을 1동, 서촌을 2동, 남촌을 3동, 북촌을 4동으로 나누었다. 1988년에 상금곡리로 개칭하였다.

금당실(金塘室)

상금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정감록(鄭鑑錄)에 이르기를, "예천의 금당실은 우리나라 十勝之地의 하나로서, 兵火가 들지 못한다"고 하여 임진왜란 때에도 온전하였다 하며, 명의 장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학고개(鶴峴)가 입구에 있고, 개고개(犬峴)가 오른쪽 어깨에 있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金鶴이 앞에 있고 玉犬이 뒤에 있어서, 중국 양양고을의 금곡과 같다"고 하였다고 한다. 유명한 풍수인 南師古(退溪 李滉 제자)가 말하기를 이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 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하고, 을미사변(1895)뒤에 낙향한 양주대감(前 法部大臣 李裕寅)이 이곳에 살면서부터 고관들이 자주 오가서 그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금당실은 경치가 좋아 금당팔경(金塘八景)이 있는데 이는 아미반월(雅眉半月), 유전모연(柳田暮煙), 선동귀운(仙洞歸雲), 용사효종(龍寺曉鍾), 죽림청풍(竹林淸風), 백마시풍(白馬嘶風), 금당풍경(金塘風景), 복천감음(福泉甘飮)[어떤이는 국사낙조(國師落照)를 넣는다.


금당실 전경 

오미봉(五美峰)

금당실 뒤에 있는 산으로 높이 200m이며 매우 수려하다. 다섯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오미(五美)란 아미반월(雅眉半月), 유전모연(柳田暮煙), 선동귀운(仙洞歸雲), 용사효종(龍寺曉鍾), 죽림청풍(竹林淸風)을 말한다.

동지미(동지뫼기)

오미봉 동쪽에 있는 산이다. 뒷 봉오리에 月川 趙穆(1524∼1606)의 조상인 橫城 趙氏 묘들이 있다.
趙穆 1524(중종 19)∼1606(선조3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 15세 때에 이황(李滉)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학업에 더욱 정진하여, 1552년(명종 7)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대과(大科)는 포기하고 독선일신(獨善一身)에만 매진하면서 이황을 가까이 모시면서 경전연구에 주력하였다. 그뒤 공조참판 등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재덕과 노병을 이유로 사직소를 올려 사퇴하였다. 그는 이황과 동향인 예안에서 생장하여 일찍 이황의 문하생이 된 이후로 일생 동안 가장 가까이 스승을 모신 팔고제(八高弟)의 한 사람이다. 이황이 죽은 뒤 문집의 편간, 사원(祠院)의 건립 및 봉안 등에 있어서 항상 성의를 다하였고, 마침내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에 유일한 배향자가 되었다. 저서로는 ≪월천집》과 《곤지잡록 困知雜錄》이 있다.

 명구바우(鳴狗바우)

오미봉에 있는 바위인데, 금당실 앞산(죽림동 뒷산)이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이고, 뒷산 바위형이 鳴狗形이어서 범이 나타나면 개가 운다고 하여 매사에 조심하라는 교훈을 준다.

무쇠장등(嶝)

오미봉 뒤에 있는 등성이로, 明나라 장수인 이여송(李如松)이 이곳을 지나다가 오미봉을 보고, "금당실에 인재가 많이 나서 중국에 폐가 된다"고 하여 이곳에 무쇠말뚝을 박아서 산의 영기(氣)를 끊었다 한다. 현재 두천리의 운암지 수로를 내기 위하여 이곳을 뚫었다.

태낭금집(泰娘琴家)

금당실에 있는 함양 박씨의 집인데, 朴廷蓍가 泰安郡守일 때, 꿈에 한 낭자가 말하기를, "제 묘에 오동나무가 서 있는데 거문고를 만들기에 좋으니 베어다 쓰시오"하여 베어다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소리가 매우 맑고 장하며, 바람을 맞아도 스스로 소리가 나므로, 자명금(自鳴琴), 태낭금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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